『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인용된 설화의 성격

2019 
『제왕운기』는 13세기에 이승휴의 사찬서서(私撰史書)로 중국과 우리나라 고대 왕조의 치적과 실정(失政)과 충신과 반역자 등을 기술하여 군왕의 수덕(修德) 곧 공부와 품성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술되었다. 이승휴는 서사시의 탄력과 울림을 위해 성찰적 스토리텔링에 부합하도록 구성하였다. 『제왕운기』는 지은이가 익히 견문(見聞)한 것을 근거 곧 직접 고증하고 고려 정통성 부합의 필치로 삼아 읊조림에 맞게 하였고, 그 선택하여 본받을 만한 것과 악하여 경계로 삼을 만한 것은 모두 일마다 『춘추(春秋)』의 필법에 따랐던 것은 군주 지도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였음을 반증한 것이다.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사료(史料)의 실증 위주의 고증을 중시하는 역사관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문학의 개연적 가치 곧 수용자의 효용성에 맞는 것을 가려서 편찬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구전심수(口傳心受)의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유자(儒子)의 필독서인 경서(經書)와 역사를 연마하는데 필요한 요소[감계(鑑誡)]와 부합되도록 선별하여 취택하였다. 『제왕운기』 10편의 설화 기사는 대체로 상권보다는 하권에 집약되어 있고, 중국의 창세(創世)신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을 제외하고는 한국 국조신화(國祖神話)인 「단군신화」의 신성성이 고려시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단군신화」를 한국사 체계 속에 당당히 포함시킴으로써 고려 역사의 유구성을 강조하였다. 이 발상은 발해(渤海)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확인한 것에서 확인된다. 부여의 부루(夫婁), 고구려의 주몽, 성골장군(聖骨將軍)인 호경(虎景)과 그의 부인, 작제건과 그의 부인 등의 서술도 그것이다. 왕조의 쇠망은 군주의 실덕(失德)과 민의 호응과 관련되기 때문에 군주의 수덕(修德)을 강조했는데, 이는 백제의 의자왕, 신라의 왕자이자 후고구려의 시조인 궁예, 후백제의 견훤 등의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제왕운기』에 수록된 설화에 나타난 새, 범, 알, 나무, 물, 용, 산 등의 관념은 공공신앙의 정신적 표징이며, 천지(天地)를 매개물, 앞일에 대한 암시, 전조(前兆) 등의 교감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이들은 천신(天神), 산신, 수신(水神)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는 동시에 한국 민족의 통합된 역사와 문화의 산실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고유 사유와 단군기원의 역사의식은 고려말 신진 사대부에게 전승되어 조선 개국 후 단군을 국조로 정착시키고, 『동국통감(東國通鑑)』을 비롯한 사서에서도 제천의식과 단군이 국조임을 밝히게 된 것이다. 『제왕운기』는 사찬사서(私撰史書)의 성격이 짙어 13세기 당대의 조야(朝野)가 원(元)의 내정간섭으로 민족의식이 위축된 시기에 한국 민족의 북방계 신화, 장소 지명, 수목암석에 얽힌 이야기를 자주적(自主的)인 시각에서 엮어낸 설화집(說話集)의 성격을 가진 스토리텔링 서사시였다. 또한 『제왕운기』는 역대 군주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주요 부분에 협주(夾註)를 가한 것은 지은이가 이전 혹은 당대에 구전되거나 전해지는 문헌을 체계화하여 왕실의 계보와 공적 기록을 중시한 뜻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독자적 설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 민족이 중국과 확연히 구별되는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국가임을 강조하였으며, 몽골의 정치적 지배에 대항하는 의지를 빗대어 표출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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