圓嶠 李匡師의 書藝論과 書藝審美

2020 
圓嶠李匡師(1705~1777)는 18C 문예부흥기에서 한 시대를 대표했던 학자 예술가이다. 1755년(영조31) 나주벽 서사건으로 인해 연좌, 완도군 薪智島로 이배되어 총 23년간의 유배생활 끝에 운명하였다. 이때 俗筆로 흐른 서법과 서풍의 문제점을 바로 잡고자『圓嶠書訣』을 집필하였고, 서법적으로 본질을 새롭게 정립코자 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주체적·자각적 서풍인 東國眞體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독창적 서예술 구현으로 호남 일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 쳤다. 圓嶠의 서예심미는 양명학의 心眞을 근저로 하는 ‘蒼勁拔俗의 嚴密美’,‘萬毫齊力의 陽剛美’,‘盡力推展의 生命美’로 전개된다. 그는 올바른 필법 구사를 위해서는 자유로운 조형과 생기가 있는 筋骨畫意를 서예의 관건으로 인식하고 篆隷古碑의 연마를 제안하였다. 생기가 있는 획이란 三過와 佶曲하는 가운데 蒼勁拔俗하여 자연스럽게 天機가 스며 들고, 필묵은 萬毫齊力의 推展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예심미는 三過折筆과 佶屈宛轉, 萬毫齊力과 推展去등 의 필법이 뒷받침되어 筋骨과 神氣로써 神彩를 드러내었고,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 필세와 필의를 추구하고, 천연 의 眞性을 드러내며 活物로써의 생명력 넘치는 圓嶠體로 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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